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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더 자유로운 행복이 있습니다
박영덕 - 중독재활센터 중독재활지도사


영화 같은 인생이었다. 탈선과 마약, 교도소와 병원, 두 번의 자살 시도…. 박영덕 중독재활센터 중독재활지도사는 그 깊은 절망에서 끝내 희망을 끌어올렸다. 재활에 도전하고, 사회에 복귀하고, 가정을 꾸리며 스스로 만든 반전과 해피엔딩. 영화가 아닌 모든 중독자들의 익숙한 이야기 속에 박영덕 지도사는 근사한 결말 하나를 일궈낸 것이다.


재활 입소자에서 중독재활지도사로 변신

중독재활센터에서 누구보다도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는 박영덕 중독재활지도사. 중독재활센터가 문을 연 2002년부터 함께 첫 발을 디뎠으니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처음에는 재활을 위한 입소자였다면 지금은 중독자 대상 상담과 강의를 진행하는 중독재활지도사로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 이곳에 처음 방문 때는 몸이 상할 대로 상해 계단을 기어오르다시피 했어요. 상담을 하며 얼마나 있으면 약을 끊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6개월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건 사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5년 가까이 마약을 했는데 6개월 만에 끊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제 반응에 오히려 얼마면 되겠냐고 되물으셨죠. 적어도 1년은 있어야한다고 했지요. ”

그 길로 입소한 박영덕 생활지도사는 1년을 꼬박 입소하여 재활에 전념했다. 특별한 프로그램보다 평생 처음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약에서 벗어난 ‘1년’이라는 시간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시간동안 그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변기 닦기, 설거지, 청소였다.

“ 매일 씻고 닦다보니 제 마음까지 닦이고 선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충실히 재활에 힘쓰다 1년이 지나자 뜻밖의 제안이 왔습니다. 중독재활센터에서 다른 입소자를 돕는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죠.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게 규칙이었던 제게 ‘생활지도사’라는 타이틀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묵직한 타이틀이 저를 더 단단히 잡아준 것 같아요. ”

입소자들을 감독하고 상담하는 생활지도사의 역할이 주어지자 몸도 마음도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모범을 보여야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누가 먼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제가 되었다. 적은 돈이지만 옳고 바른 일을 한 후 받는 대가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과 보람을 차츰차츰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 평범한 일상의 행복과 보람을 차츰차츰 알아가기 시작 "

25년 마약에 빠지고, 16년 마약을 끊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중독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박영덕 지도사. 그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지난했던 과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다. 누구보다도 심하게 마약에 빠졌던 스스로를 내보이며 자신이 특별해서 재활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용기를 주고싶은 마음에서다.

“ 15살에 집을 나와 탈선을 하며 약을 접하기 시작했어요. 마약을 하다 보니 사는 게 내 맘대로 안 되어 자살 시도만 2번 했어요. 서른 살에야 집에 들어갔는데 가족 입장에서는 정신병원 입원이 최선이었어요. 11번이나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약을 끊을 수 없었지요. 관계는 모두 깨지고, 돈을 구하기 위해 남을 속이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결국 혼자 남았을 때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

박영덕 지도사는 서울역 노숙생활까지 경험했다. 놀라운 건 그 두 달을 ‘두고두고 좋은 추억’이라고 회상한다는 점이다. 마약을 하면서도 늘 교만했던 당시, 몸까지 안 좋아 꼼짝없이 바닥에 누워만 있던 그에게 다른 노숙자가 급식으로 받은 식판을 건넸다.

“ 그 더러운 손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첫날은 안 먹는다고 내팽개쳤죠. 그런데 다음날 또 밥을 내밀더라고요. 그 뭉클한 손을 잊지 못해요. 사실 그동안 저에게 이유 없이 내민 도움의 손길들이 참 많았어요. 그때는 뿌리치기 바빴는데 지금에서야 고마움을 느낍니다 ”

바닥에서의 노숙생활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을 찾았고, 처음으로 의사 앞에서 ‘마약중독자’임을 인정했다. 치료를 위한 첫 단추가 꿰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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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더 큰 일상의 행복, 누구나 누릴 수 있길

치료와 재활은 물론 쉽지 않았다. 어떤 중독자보다 깊은 늪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박영덕 지도사는 그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재활을 위해 찾아오는 중독자에게 함부로 ‘약을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활의 희망을 보여준다.

“ 마약을 하지 말라는 말은 늘 듣는 이야기일 거예요. 귀에 절대 안 들어오는 소리지요. 약을 끊고 싶냐고 물으면 대부분 끊고 싶다고 답해요. 다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문제죠. 마약을 끊고자 한다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먼저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문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의지를 다지기가 쉽지 않죠. ”

마약을 끊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영덕 지도사.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중독자’라고 정의하고, 마약류 중독자 자조모임인 NA(Narcotics Anonymous)의 창립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마약을 끊은 지 16년이지만 여전히 마약의 유혹과 싸우면서 마약보다 더 큰 즐거움을 하나하나 늘리는 중이다.

“ 2007년 결혼을 하고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처음 ‘아빠’라고 불렀을 때 생전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가 가슴에서 울컥하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마약만이 자유이고 행복인줄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 저에게도 오더라고요. 저는 다른 데로만 찾으러 다니며 남들에게 피해만 주고 살았는데 말이죠. ”

마약보다 더 강렬한 힘, 그것은 가족에게 있었다. 그 기쁨과 환희를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박영덕 지도사가 중독재활센터에 애정과 사명을 가지고 몰두하는 이유는 자신이 스스로 놀라운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 저와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중독재활센터에 들어서기조차 두려운 사람이 있지요. 그럴 때 ‘영덕이 형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여러분과 똑같이 중독자였던 이가 항상 여기 있다고 말이죠. 도움이 필요하면 한밤중에도 달려갑니다 ”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 중독재활센터에는 박영덕 중독재활지도사가 있다. 어쭙잖은 훈계가 아니라 진심어린 다독임을 전해줄 이가 있다. 모두가 잊지 않으면 좋겠다. 재활의 상징이자 희망의 증거로 박영덕 지도사가 오늘도 반갑게 웃음 지으며 누군가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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