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대를 통해 중독자의 사회복귀 길 열어야
이경희 이사장 - 신년 대담
마약을 둘러싼 국내외 흐름이 심상치 않다. 캐나다는 기호용 대마초의 법적 규제를 풀었고, 우리나라도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마약 판매가 SNS를 통해 이뤄지면서 마약에 접근하는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고, 대한민국은 마약안전지대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은 중독자를 파악하여 치료와 재활로 이끄는 시스템은 미약하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가 가야할 길이 바쁜 이유다. 2019년 신년을 맞아 마련한 이경희 이사장과의 대담은 우리나라 마약퇴치 운동이 가야할 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주목해야 할 마약류 이슈, 마퇴본부에게 필요한 역할과 위상, 마퇴본부의 주요 방향을 점검해보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마약안전지대로 통하지만 그 지위가 위태롭습니다.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해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텐데요. 현재 마약류 이슈는 어떻게 변화하는 양상인가요?
청소년과 여성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검찰의 마약사범 단속 통계를 보면 40대, 30대, 50대 순이었습니다. 청소년 사범 비율은 낮았지요. 그런데 최근 SNS, 해외직구 등 직접 접촉하지 않고 마약을 구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청소년들의 접근이 쉬워졌습니다. 혼자 사는 젊은 층이 늘면서 가정내 통제가 안 되는 것도 문제를 키우지요.
여기에 캐나다가 대마초를 합법화하면서 우리나라도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마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퍼져있는 마약이지만 우리나라는 10% 정도로 유독 낮았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의 합법화로 별다른 경계 없이 유학생과 관광객 등이 무심코 접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대마는 성장기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회복이 잘 안 되는 해를 입힙니다.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약류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심각하게 경계하지 않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게 마퇴본부의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마퇴본부는 맞춤형 예방프로그램과 재활프로그램의 질 향상 등 실효성 있는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급변하는 마약류 이슈에 2019년에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이신가요?
2018년은 중독재활센터의 역할을 새로 다지는 한 해였습니다. 중독자를 입소시켜 생활 전반을 감독하는 단편적인 재활에서 탈피해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지요. 낮에는 중독자 본인이 재활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가족들도 중독자 이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이들의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고통을 위로하고 대처법을 공유하는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죠. 계층별 자조모임을 만들어 교육과 상담의 세분화 또한 이끌었는데요. 여성은 중독자 중에서도 차별을 받는데 여성자조모임이 만들어져 맞춤형 접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정된 교육 환경을 개선해 2018년 연인원 3,000명 이상이 방문한 것도 새로운 사회적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한 사례인데요. 올해도 이 흐름을 이어가 재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복귀로 이어지는 시스템구축에 힘쓰고자 합니다.
예방교육의 폭 역시 넓혔습니다. 위험성은 높지만 교육이 잘 안되는 다문화가족, 탈북자가족, 학교밖 청소년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대학연계 교육은 물론 청소년의 부모 계층인 직장인 대상 교육도 시작했습니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올해는 세분화한 맞춤형 교육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에 발 맞춰 체계적인 상담사, 교육강사 양성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2년여의 준비 끝에 2018년 ‘마약퇴치전문교육원’을 등록시켰습니다. 올해부터는 전문적인 교육을 펼칠 강사 양성소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대국민 예방과 중독자 재활이라는 두 축을 더 견고하게 다져가겠습니다.
마퇴본부의 활동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요구되는 정책이나 시스템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검찰, 경찰, 관세청, 교육부, 식약처 등 12개 기관이 모인 마약류대책협의회가 있습니다. 마약퇴치를 위해서는 사용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평가해 적절하게 치료하고, 재활시켜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까지 단계적으로 평생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마약 이슈를 함께 공유하여 예방부터 사회복귀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관 간 협조가 잘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내부적인 연계도 중요합니다. 마퇴본부는 12개 지부가 있습니다. 본·지부간의 유기적 연결과 긴밀한 공조로 활동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도록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습니다.

마퇴본부가 설립된 지 올해로 27년째입니다. 마약류 이슈에 전담 대응하는 거의 유일한 조직으로 위상을 다져왔는데요. 현재 펼치는 활동 외에 앞으로의 강화되어야 할 역할,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약류 범죄자는 연간 1만4천~5천 명 수준입니다. 하지만 마약류를 접하고 있으면서 단속되지 않는 중독자들, 일명 암수범죄 규모는 정확히 파악 되지 않고 있습니다. 숨어있는 중독자는 대략 30~4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엄청난 숫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못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로 국가적 차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찾아내어 밝은 세상으로 이끄는 역할을 마퇴본부가 해야 합니다.
약국과의 연계를 통한 전문 상담원 연결 등 다양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처벌만이 아닌 교육과 치료를 내세워 안심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다 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교육해 마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마퇴본부는 존재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퇴본부의 장기적인 과제이자 역할은 재활교육을 통한 사회복귀입니다. 치료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 사이클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배척하지 말고 책임감을 가지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보건, 경찰, 시의회 등 지역 내 기관들이 연대체제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자활을 이끌어야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마퇴본부 12개 지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 공조가 중요합니다. 마약류 관리가 느슨한 해외에서 생활하는 유학생과 동포가 많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예방 활동을 펼치기 위해 미국지부, 중국지부를 설립했지만 활동을 본격화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퇴본부는 국내를 넘어 한인보호, 재외동포 보호 차원에서 한국어로 마약예방 교육을 펼치고 외국기관과도 협조 체계를 구축해나갈 예정입니다.
마퇴본부의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작은 조직으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관심과 지원이 미약해 허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약중독자를 상대로 교육하고 상담하는 열정적인 직원들을 보며 힘을 얻습니다. 밤낮 구분 없이 뛰는 이들을 가리켜 ‘마약퇴치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하게 마약퇴치에 힘쓰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덕분으로 중독자 가족들이 감사의 뜻을 표할 때 진짜 ‘마약 없는 밝은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나 뿌듯합니다.
새해를 맞아 마퇴본부 임직원과 국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정부나 일반 국민들의 마약류 인식이 월등히 낮은 상황에서 어려운 일을 하느라 마퇴본부 직원들의 고생이 많습니다. 많은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마약류에 인식을 높여 든든한 지원과 응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2019년 기해년에는 원하는 일이 다 이뤄지길 기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고 싶었는데 여건상 못했던 일,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과정에서 많은 행복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