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말하다
질문도 바로 “이유”에 대한 탐구이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고통을 받을 때 우리는 이유를 가장 먼저 찾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숲속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도 나뭇잎 사이로 속삭이며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 하늘에 대고 외치면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을 흘길 것이다. 옛날이야기와는 다르다. 이야기 속의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잡히지만, 현실에서는 도망만 다니는 듯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나, 돌이켜보면 사실 하늘은 무너진 적이 없다. 이모의 자살을 목격한 어머니가 그 한을 어린 내게 풀었을 때도 하늘은 그대로였고, 동성연애자라는 근거로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도 하늘은 파랗기만 했다. HIV 양성 판정을 받고 보건소까지 동행해 준 친구와 파란 하늘 아래에서 담배를 피웠다. 마약이 담긴 주사기 바늘을 처음으로 몸 안에 넣었을 때도, 어두운 모텔방 밖의 밤하늘은 전날 밤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 후 약을 찾아 거리를 배회할 때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있었으며, 경찰에 잡혀 심문을 당했을 때도 창가로 보이는 하늘은 맑기만 했다. 소나기가 잠깐 오기는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나기가 왔었나? 경찰서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 잊게 되어있다. 시간이 지나면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조차 둔감해지는 것이 순리이다. 당신이 그럴지는, 당신도 그랬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랬다.
마약전담반에서 나와 짜증 날 정도로 푸른 하늘을 등에 진 채 향한 곳은 마약퇴치본부였다. 왜? 사람이란 위기에 직면해야 비로소 짱구를 굴리니까. 소를 잃어봐야만 외양간을 고치려 하니까. 물이 새야지 항아리가 금 간 줄 아니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돈과 마약퇴치본부였고, 나는 돈이 없었으므로 후자를 선택했다.
영화에서 보듯 삼삼오오 둘러앉아 재활이라는 이름 하에 세뇌를 당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상담은 오히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마약퇴치본부의 상담사들은 내 지루한 신세 한탄을 최대한 들어주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과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조금은 황송할 정도로. 이후 나는 마약퇴치본부에서 약 2년 동안 상담을 받았다. 마약이 주된 내용은 아니었다. 가족문제. 학교문제. 직장문제. 인생문제. 기분문제. 거기에 후추 뿌리듯 중독에 관한 상담 조금.
경찰서와 검찰까지 갔다 왔지만 나는 아직도 단약을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상담 중에도 약물 사용은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폭발적으로 재발했다.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현대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들 중 하나가 경찰서에 드나드는 것이라던가. 그걸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신을 보며 절망하며 울었다. 나중에는 약에 취한 상태에서 울게 된다. 재발할 때마다 상담사님께 전화를 드려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상담은 계속되었다. 재발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천천히, 재발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 나는 단약 생활을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하던 일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약퇴치본부도 “졸업”하여 숨겨왔던 두려움을 버리고 정신병원에서 조울증 치료도 받고 있다. 마약을 접한 일이 없었던 듯 나는 하루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충동적 행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던데, 내가 마약을 접한 이유는 조울증이었을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유란 없다면 없는 것이고, 있다면 끝없이 말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누구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를 움켜쥐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하겠다.
나도. 당신도.